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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혁이의 눈물

구방구방 2023. 9. 10. 00:06

그때 그때 날짜를 적어두지 않아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내 상태가 아직 많이 좋지 않았을 때로 봐서는

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가 맞을거 같다.

 

아이와의 일상은 지시와 타이름, 그리고 화냄의 연속이다.

기준이 너무 다르기 때문일텐데, 그 기준을 토론과 합의로 맞춰내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아마 다들 어릴 적의 기억 때문이라도, 처음부터 강제로, 화를 내며, 막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금방 나는 내 어린 시절에 어른이 되어 있었다. 막 강제로, 화를 내는 그런.

 

그런 날의 연속이었던 어떤 날, 거실 소파에서의 한 장면.

동혁이는 동혁이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주장을 굽힐 줄 몰랐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대략적인 기억으로는 이 갈등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한 서로의 고집이었던 것 같다.

 

아이와의 갈등은 몇 가지 형태로 최종 마무리가 된다. 이기든지 지든지.

내가 이기는 경우는 어마어마한 화로 상황이 종료된다.

나는 부모고, 넌 아직 나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번째는 회피하고 넘어가는 경우이다.

그래 아직 어리니까 이번만 봐주지 뭐. 그래. 동혁이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런데 그날은 내가 너무 슬펐다. 왜 그런지 모르게 슬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평상시와는 다른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동혁아, 아빠가 지금 화를 계속 참고 동혁이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는건

아빠가 동혁이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다른 이유는 없어."

 

나도 나의 이야기에 놀랐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8살 꼬맹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나도 그렁그렁.

 

이십여년 전 충무로 어느 술집에서의 몇 장면이 떠올랐다.

모두가 힘들게 활동을 이어가던 어느날 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술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선배가 모두에게, 힘들지? 라고 물어보며 어께를 툭툭 쳤고

그때부터 그 술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펑펑 울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들 울어댔을까.

내 아픈 마음을 들키기라도 했던 걸까.

 

그때 나는 그런 선배가 되지 못했는데,

지금 나에게 그런 아빠가 되게 해준 동혁이.

 

9월 10일 밤, 혼자 놀고 있는 동혁이와 장기 한판을 재미있게 두고,

지난 6개월의 기억 중 하나를 꺼내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