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새 디딤돌을 밟다.
2023년 3월,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당시 내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올해 초 이미 나는 부서장에게 업무 배제를 요청해서 사실상 쉬고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답답한 마음에 업무지원을 나갔던 곳에서 지독한 괴롭힘(?)을 당해
그나마 추스렸던 마음이 도로 피폐해졌다. 그 이후로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제와서 기억을 떠올려보면 3월에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과
학교에서 데리러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정말 최소한으로 살았다. 아니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졸리면 잤고, 배고프면 먹었고, 놀고 싶으면 놀았다.
얼굴에 있는 점들이 보기에 거슬려서 난생 처음 피부과에 가서 점도 뺐다.
수영장이 가고 싶어서 동네 수영장을 예약했다.
2006년에 와이프(당시 여자친구)가 사준 수영복을 꺼냈고, 돗수가 있는 수영안경도 샀다.
그래. 한달정도는 쉬고, 4월부터 수영도 하고 좀 움직여봐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육아휴직의 휴식은 이전의 그것과 몇 가지에서 달랐다.
첫번째, 휴직의 본 목적이자 절대 사수(?)해야할 일상은 1학년 초딩의 등하교 에스코트였다.
걸어서 3분 거리의 학교는 코로나와 미세먼지로 인해 수년간 실내활동에 최적화된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험난한 미션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집 초딩은 무려 신호등이 없는 1개의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있는 1개의 횡단보도를 지나
학교 후문을 통해 등교를 해야했다.
후문 앞에서 소위 '빠이빠이'를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지 않으면
간혹 다시 뛰쳐나오곤 했다.
그렇게 매일아침 눈물이 그렁그렁한 극적인 장면들과 함께 등교에 성공하면
금방 하교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다시 학교로 향했다.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초딩은,
'아빠가 좀 늦게 왔었으면 꿈터(돌봄교실에 있는 놀이방)에서 더 놀 수 있었을텐데...'
라는 놀라운 말을 하곤 했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8시에 시작해서 9시에 끝나고, 다시 5시에 시작돼서 10시에 끝났다.
두번째, 육아휴직의 휴식은 철저한 노알콜(temperance, 금주)이었다.
물론 이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나는 내가 술을 좋아하는 크기와는 상반되게
혼술을 (거의) 하지 않는다.
집에 들어와서 맥주 한 캔, 밥먹으면서 소주 한 잔, 이런걸 즐기지 않으니 술자리에나 가야
술을 먹을텐데, 초딩 1학년의 매일 5시 하교는 자연스럽게 나의 모든 알콜 섭취를 중단시켰다.
사실 고맙기도 했다.
(육아휴직이 마무리된 9월 4일 현재, 6개월간 대략 20회 정도의 음주를 한 것으로 나의 캘린더가
알려주고 있다. 휴직 전 나의 음주생활 일상으로 보면 현저히 적은 횟수임에는 틀림없다.)
세번째, 가사노동의 중심이 와이프에게서 나에게로 이동했다.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10년이 넘은 결혼생활 기간동안의 미안함에
애써 그렇게 하려고 한 것도 있었다.
여전히 압력밥솥에 밥을 해서 냉동밥을 만든다거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을 보는 일들은
아내의 몫이었지만, 적어도 몸으로 뛰어서 할 수 있는 일은 내 몫으로 가져왔다.
세탁기가 해주고 건조기가 말려주는 빨래, 식기세척기가 해주는 설겆이, 분리수거, 쓰레기 버리기,
청소기 돌리기, 토요일에 초딩 축구교실 에스코트, 매일 평일 저녁 초딩 목욕 및 저녁식사 등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단 두마디로 정리되는 가사와 육아.
여전히 와이프가 하고 있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많은 일들이 내 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집안일에 관해 내 발언권이 조금 쎄진(?) 것은 나름 성과이기도 하다.
이제 휴직과 휴식의 시간이 이제 모두 끝났다.
휴직 마지막날 밤에 이렇게 글을 쓰는건,
문득 육아휴직기간 동안의 내 기억을 글로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짧고도 길었고, 고통스러웠지만 힘이 됐던 2023년 3월부터 8월까지의 기억을
어디에 적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갑자기 다음 블로그를 만들다가 티스토리까지 흘러와서 여기에 글을 쓰고 있다.
일상이 시작되는 9월 4일 이후로,
내가 지난 6개월의 기억을 글로 저장하는 일에 얼마나 성실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시작 자체도 안하고 싶지는 않아 오늘의 기억만큼 이곳에 글로 남긴다.
나는 지금, 벼랑 끝의 기억은 선명한데, 디딤돌의 기억이 잊혀질까 두렵다.